[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48) 교도소출주장병성책, 선봉진출정장졸성명급기복마실수성책, 본진별군관차출기, 친군장위영장졸실수성책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48) 교도소출주장병성책, 선봉진출정장졸성명급기복마실수성책, 본진별군관차출기, 친군장위영장졸실수성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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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9월에 제2차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한 이후 정부는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해 양호도순무영을 설치하였는데, 여기에는 통위영·장위영·경리청과 일본군에게 훈련받은 교도중대가 소속되었다. 양호도순무영은 양호도순무사 신정희, 좌선봉 이규태, 우선봉 이두황 등이 지휘하였고 동원 병력은 총 2,500여 명에 이르렀다.
친군 장위영 정영관이었던 이규태는 양호도순무영 별군관 겸 순무 선봉장으로 임명되어 교도대와 통위영 각 부대를 이끌고 10월 10일 서울을 출발하여 동학농민군 진압에 나섰다. 양호도순무영은 선봉장이 정부군과 지방 관군 등 진압 병력 전체를 통제하는 총지휘관이었다. 이 때문에 선봉장 이규태가 순무영과 군무아문 등에 각종 보고서를 올렸고, 휘하 병영의 병력 및 전투보고서가 선봉진에 전해르노삼성 노조
졌다. 또한 각급 관아와 주고받은 공문 등 선봉 이규태와 관련한 문서가 매우 많이 작성되었다. 이번에 소개하는 세계기록유산 기록물 역시 그 과정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교도소출주장병성책 표지. 고려대 도서관 제공
서브프라임등급
△교도소출주장병성책(敎導所出駐將兵成冊)
1894년 10월 동학농민군 토벌에 종사한 교도소 장병의 직책과 성명을 기록한 기록물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교도소는 1중대 3소대, 1좌익 3소대로 구성하였다. 교도소를 이끈 지휘관은 정령관 이00, 중대장 이진호, 1소대장 이민굉, 2소대장 이겸제, 3소대급여압류가능금액
장 최영학 등이다. 그밖에 좌익장 이승규, 1소대 교장 이태황·유성원, 2소대 교장 김장욱·조인순, 3소대 교장 김금석과 서기 송정순·엄주환, 군조 김동욱·이동근, 별군관(別軍官) 이병효·임경준·이건원 등 18명으로, 이들에게는 매일 1냥 5전씩 지급, 30일에 총 810냥이 지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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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출주장병성책 명단. 고려대 도서관 제공
그리고 1-3소대와 산하 1-5분대의 규칙, 십장, 병정, 기타 곡호수, 후병, 장부, 사후, 화병, 마부 등 도합 328명의 직급과 이름을 수록하였다. 이들에게는 매일 1냥 5전 합 514냥 5전을 지급하였다. 말 46필에는 매일 1아파트 매매 대출 한도
냥 8전 합 92냥 8전, 도합 매일 607냥 3전, 10일 2,074냥, 30일 1만 8,219냥을 지급하였다. 특이한 점은 군인 1명보다 말 1필에 지급된 급료가 더 많았다.
이를 통해 동학농민군 진압에 동원된 교도소 중대의 병력 편제와 인원, 명단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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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봉진출정장졸성명급기복마실수성책 표지. 고려대 도서관 제공
선봉진출정장졸성명급기복마실수성책 명단. 고려대 도서관 제공
△선봉진출정장졸성명급기복마실수성사업자햇살론대출자격
책(先鋒陣出征將卒姓名及騎卜馬實數成冊)
1894년 10월 동학농민군 토벌에 종사한 선봉진의 출정 장졸의 직책과 성명, 그에 필요한 마필의 수효를 기록하여 책자로 만든 기록물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선봉진 장졸은 참모군관 4명, 별군관 8명, 별무사 안성관·김태형과 종인 1명, 서자지 2명, 뇌자 4명생활의지혜100가지
, 순영수 4명, 아병군 2명, 등롱군 2명, 장막군 2명, 장부 3명, 복직 1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좌마 1필과 마주와 마부, 기마주부, 복마군 명단도 기록되어 있는데, 군인은 모두 총 59명이었고 말은 기마 17필, 복마 6필이 있었다.
동학농민군 진압에 참여한 선봉진의 병력 편제와 인원, 물자농협 학자금
규모를 알 수 있다. 특이한 점은 뇌자 4명이 있는데, 뇌자(牢子)는 죄인을 문초하거나 구금하는 등의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이었다. 이것으로 보아 친군영은 처음부터 동학농민군 진압 뿐 아니라, 동학농민군을 체포하여 심문하는 임무를 가지고 출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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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군관차출기 표지. 고려대 도서관 제공
△본진별군관차출기(本陣別軍官差出記)
1894년 10월 이후 동학농민군 토벌에 참여한 별군관 차출 내용을 기록한 문서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은 신분 밑에 별군관 차출 대상 성명을 기록하였다. 신분은 출신, 유학, 부사용, 사과, 전 감찰, 전 학관, 전 군수, 전 오위장, 부호군, 진사, 한량 등 다양하였다. 주로 전현직 관리들로서, 의병 지원 및 차출 대상자와 면제자 등으로 분류되어 있다.
차출 지역은 순창, 영광, 해남, 영암, 흥양 등 전라도 지역과 연기, 문의, 진천, 서천, 홍산, 서산, 온양, 홍주, 보령 등 충청도 지역이었다. 동학농민군이 주로 활동한 전라도와 충청도에 집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본진별군관차출기 명단. 고려대 도서관 제공
차출 별군관 가운데에는 영광 흥농면의 이현숙(李賢淑)이 나온다. 그는 법성포 첨사를 하다가 1894년 봄에 동학에 입도하였는데, 겨울에 전향하여 영광 대접주 오시영(吳時泳)을 정부군에게 넘겼고, 민보군을 소집하여 무장 대접주 송문수를 잡아 관군에 바친 자이다.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 인물 명단인 「갑오군공록」에 “영광민 이현숙은 의기를 떨쳐 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며 거괴를 붙잡아 바쳤다”라고 되어 있다. 그가 동학농민군을 배반한 뒤 공을 세우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반동학농민군 활동을 하였는지 알 수 있다.
이 기록물 말미에는 온양 역촌에 사는 부장 이민식은 동학에 의탁하였으니, 만약 침학하면 금단 처리할 것을 지시한 내용이 있다.
이와 같이 별군관은 지역 출신으로 현지 사정에 밝고 어느 정도 지위도 있었기 때문에 동학농민군 체포에 유리하였다. 특히 별군관들은 공을 세워 출세할 요량으로 더 적극적으로 동학농민군 체포에 앞장을 섰기 때문에 동학농민군에게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다.
친군장위영장졸실수성책 표지. 고려대 도서관 제공
△친군장위영장졸실수성책(親軍壯衛營將卒實數成冊)
동학농민군 진압에 참여한 친군 장위영 장졸 명단이다. 장위영은 1894년 6월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이후 일본군에 의해 새롭게 조직된 부대이다. 양호도순무영은 죽산부사 이두황을 순무영 예하의 친군장위영 부영관으로 임명하여 우선봉장으로서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도록 하였다. 1894년 10월에 작성된 기록물로,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먼저 선봉진 장관 좌목을 보면, 참모관에는 전 부정자(前 副正字) 이규백, 전 도사 권종석, 전 학관(學官) 이구영, 유학 이승욱·정도영, 별군관에는 전 수문장 유석용, 출신 이달영·송흠국(훈련대 장관) 등 19명의 신분과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별군관 신분은 기사장, 전 감찰, 전 부장(部將), 전 오위장, 전 중군, 전 만호(萬戶), 상리국 공원(公員), 기교(譏校) 등 다양하였다. 이를 통해 다양한 계층이 동학농민군 진압의 공을 세워 출세하고자 하였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친군장위영장졸실수성책 명단. 고려대 도서관 제공
다음 친군 장위영 장졸 명단에는 부령관 이두황, 참령관 원세록을 비롯하여, 별군관 이겸래·조편·윤지영·김광수로 되어 있고 그 밑에 제1대부터 제4대 등의 직책과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각 부대는 대관, 교장, 규칙, 십장, 병정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대는 67명, 49명, 65명, 제2대는 25명, 29명, 44명, 제3대는 45명, 62명, 65명, 제4대는 74명, 62명, 44명으로 편제되었다. 이하 참령관 직속으로 규칙, 십장, 병정, 화병, 장부, 후병 총 14명을 두고, 곡호대는 십장과 병정, 화병 17명으로 총 692명이었다. 그밖에 서기 5명, 통인 2명, 기찰포교 22명, 졸 3명, 관기 3명, 보부상 4명, 마부 51명으로 도합 850명이고 우마는 96필을 두었다.
위 기록물들은 원래 『각진장졸성책(各陣將卒成冊)』에 들어 있는 자료들이다. 『각진장졸성책』에는 이들 자료 외에도, 1894년 10월 동학농민군 토벌에 종사한 선봉진 휘하 경리청, 장위영, 통위영, 교도소 등 각 부대의 장병 성명과 직위를 기록한 각 부대의 비용 명세서인 「경각영공급기(京各營供給記)」, 「창의인명록(倡義人名錄)」, 「물금첩기(勿禁帖記)」, 「죄인록」 등 각종 성책 등이 첨부되어 있다. 이를 통해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정부군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동원하였을 뿐 아니라, 민간의 인력과 물자 역시 동원하여 총력전으로 동학농민군을 진압하였음을 알 수 있다.
김양식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소장
김양식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