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가다]日서 ‘60년 전 수교 증인’ 병풍 공개
[앵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한일 협정 당시 서명식장에 있던 병풍이 일본에서 공개됩니다. 양국이 절반씩 주고 받은 이 병풍은, 두 나라를 잇는 상징으로 남아있는데요. 세계를 가다, 도쿄 송찬욱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기자] 60년 전인
[앵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한일 협정 당시 서명식장에 있던 병풍이 일본에서 공개됩니다. 양국이 절반씩 주고 받은 이 병풍은, 두 나라를 잇는 상징으로 남아있는데요. 세계를 가다, 도쿄 송찬욱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기자] 60년 전인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185건 중에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작성된 4통의 편지가 포함되어 있다. 이 편지는 원본은 아니고 필자 또는 다른 사람에 의해 필사된 것으로 작성자가 누구인지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편지 내용
1894년 9월에 제2차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한 이후 정부는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해 양호도순무영을 설치하였는데, 여기에는 통위영·장위영·경리청과 일본군에게 훈련받은 교도중대가 소속되었다. 양호도순무영은 양호도순무사 신정희, 좌선봉 이규태, 우선봉 이두황
1894년 봄에 시작해서 가을에 전국에서 치열하게 벌어진 동학농민군의 활동은 겨울이 되면 급속히 축소된다. 일본군이 주력인 진압군에게 충청도의 공주 우금치전투를 비롯한 세성산전투, 홍주성전투, 청주성전투, 옥천 증약전투, 연산전투, 논산전투 등에서 패배한
이번에 소개할 첩보류는 모두 3종류이다. 먼저 『첩보(牒報) ①』(구분하기 위해 임시로 부여한 번호, 규장각 소장도서 26300)은 1895년 4월 말부터 5월 말까지 전국 각도에서 법부로 보내온 첩보들을 철한 것이다. 전국 각지방에서 범죄 혐의자를 체포하거나 범행 내용